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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분하다, 비스와봐 쉼보르스카

 모래 알갱이가 있는 풍경


우리는 그것을 모래 알갱이라 부르지만

그에게는 알갱이도 모래도 아니다

그는 이름이 없어 만족스럽다

보편적인, 특별한,

스쳐지나가는, 오래 남는,

잘못된 것이든, 적당한 것이든.

우리가 보건 손대건 그에게는 아무 상관도 없다

만져지든, 보여지든 느끼지 않는다

창턱에서 떨어졌다는 것은

우리의 일일 뿐 그의 고난은 아니다

어디에 떨어지든 그에게는 똑같다

벌써 떨어졌는지, 떨어지고 있는지

확신하지 못한 채.

창으론 아름다운 호수의 풍경,

그러나 그 풍경은 자기를 못 본다

색깔없이, 형태없이

소리없이, 향기없이

이 세상에서 그에게는 아픔도 없다

호수바닥한테는 바닥이 없고

기슭에게는 기슭이 없다

호수물은 젖지도 마르지도 않았고

작지도 크지도 않은 돌 둘레에

스스로의 물결 치는 소리에

귀먹은 파도는 낱개도 여러개도 아니다

태양이, 지지 않으면서 지고

알아채지 못하는 구름 너머 숨지 않은 채 숨어 있는,

본래 하늘 없는 하늘 아래 모든 것.

분다는 이유 외에는 아무런 다른 이유없이,

바람이 구름을 몰고 다닌다

일 초가 지나가고

두 번째 초

세 번째 초

그러나 그것은 오직 우리의 삼 초일 뿐.

중요한 소식을 가진 사자 같이 시간은 급히 달려갔다

하지만 그건 우리의 비유일 뿐.

그의 서두름이 불러일으킨, 상상의 인물,

그리고 비인간적인 소식.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끝과 시작》, 최성은 옮김, 문학과지성사



뭔가를 찾아 헤매는 꿈을 꾸었다.

어딘가에 숨겨놓았거나 잃어버린 뭔가를,

침대 밑에서, 계단 아래에서,

오래된 주소에서.

무의미한 것들, 터무니없는 것들로 가득 찬

장롱 속을, 상자 속을, 서랍 속을 샅샅이 뒤졌다.

여행 가방 속에서 끄집어냈다,

내가 선택했던 시간들과 여행들을.

주머니를 털어 비워냈다,

시들어 말라버린 편지들과 내게 발송된 것이 아닌 나뭇잎들을.

숨을 헐떡이며 뛰어다녔다,

내 것과 내 것이 아닌 것들,

불안과 안도 사이를.

눈의 터널 속에서,

망각 속에서 가라앉아버렸다.

가시덤불 속에서,

추측 속에서 갇혀버렸다.

공기 속에서,

어린 시절의 잔디밭에서 허우적거렸다.

어떻게든 끝장을 내보려고 몸부림쳤다,

구시대의 땅거미가 내려앉기 전에,

막이 내리기 전에, 정적이 찾아오기전에.

결국 알아내길 포기했다,

그토록 오랫동안 나는 과연 무얼 찾고 있었는지.

깨어났다.

시계를 본다.

꿈을 꾼 시간은 불과 두 시간 삼십 분 남짓.

이것은 시간에게 강요된 일종의 속임수다,

졸음에 짓눌린 머리들이

시간 앞에 불쑥 모습을 드러낸 그 순간부터.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충분하다》, 최성은 옮김. 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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