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5Fa1jpnMbk5UH0ywGXeQhVQg931iP4rAmvPObGQ

한나 아렌트의 생각 :오늘 우리에게 한나 아렌트는 무엇을 말하는가, 김선욱

5. 독단과 이해 


아이히만의 사유와 언어, 나치의 언어규칙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의 징후에 대해 ‘말이 작동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아이히만은 자기의 언어가 되어버린 관청 용어들을 다른 말로 바꾸어 설명할 능력이 없었다.이것은 아렌트가 지적한 ‘말의 무능함’이다. 말의 무능함은 말의 뿌리에 있는 사유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타난다. 사유의 무능성이 말의 무능성으로 나타난 것이다.

나치는 우회적인 표현법을 언어 규칙으로 만들어 사용했다.  
나치는 실제로 벌어지는 일이 언어로 표현되지 못하도록 차단해, 잘못된 명령이라도 무비판적으로 따르게 했다.

아렌트는 행위와 말 가운데 말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보았다.


행위의 의미는 항상 말로 해명되기 때문이다. 말에는 힘이 있고, 말하는 것 자체가 행위다. 그뤼버 감독은 아이히만을 설득하려고 시도했어야 했고, 그 말이 잘 작용하는지 확인했어야 했다는 아렌트의 지적은 냉정하다.


상투어와 독단


시간과 현실이 변함에 따라 말도 같이 변해야 하는데 고집스럽게 사용돼 상투어가 된 것이다. 따라서 상투어는 생각을 새롭게 일궈내지 못하고, 현실을 고정된 관념에 맞춰 이해하도록 한다. 상투어를 통해서는 현실의 생생함이 생각 속으로 들어올 수 없다. 
말이 변하지 않으니 진부해지는 것이다. 악의 평범성을 악의 진부성으로도 번역할 수 있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말에는 생각을 변화시키고, 사람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 말이 주는 영향력을 거부하는 것을 독단이라고 한다.
독단은 자기만의 생각에 사로잡혀, 말을 통해 다가오는 현실의 영향력을 거부하는 것이다. 독단에 빠진 사람들은 자기 틀에 갇혀 산다. 그래서 새로운 이야기를 들어도 자기의 틀 안에서만 생각하고 말한다. 심지어 남에게도 자신의 생각을 따르도록 요구한다.
독단에 빠진 사람은 대화할 때 자기 생각만 반복적으로 말한다. 그에게 말은 자기의 독단을 관철하는 도구로만 기능한다. 이때 말은 세상을 공격하는 도구로만 쓰일 뿐, 현실의 영향력을 반영해 자기 생각을 바꾸도록 하지 않는다. 말의 힘이 그에게는 작동하지 않는 것이다. 독단에 빠진 사람에게 말은 항상 공격용 무기일 뿐 대화 장치가 아니다.


이해와 지식


독단의 정반대는 이해다. 
이해란 낯선 곳에 적응하기 위해 필요한 정신 능력이다. 그 어떤 세계라도 친숙해지기 전에 제대로 알아야 한다.

아렌트는 그런 세계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어떤 모습인지 자세히 들여다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견딜 수 없는 험악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이 세계를 직시하는 것도 사실은 참기 어려운 일이다. 그렇지만 그런 세상을 외면하지 않고 참고 견디며 들여다보는 가운데 이해를 추구해야 한다고, 일이 어떻게 해서 그렇게 진행되었는지 체계적으로 살펴보아야 한다고 아렌트는 말한다.

이해는 지식과 다르다.
이해는 특정한 내용을 아는지 모르는지의 문제가 아니다. 그 내용에 대해 우리가 어떤 태도를 취하는지의 문제다.
지식이 많은자가 반드시 세상을 바꾸지는 않는다. 전체주의의 실상을 이해한 사람이 전체주의에 대한 지식까지 갖추게 되면, 그는 그  지식으로 전체주의와 싸우려고 노력한다. 
이해가 형성되지 않은 사람의 지식은 맹목적이다. 방향성 없이 좌충우돌하며 도구적으로만 활용될 뿐이다. 


115. 아렌트는 우리를 사유하게 한다.